설교 제목: 하나님과 함께하는 권세 (Power with God)
본문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하나님과 함께하는 권세를 갖는다는 것은 숭고한 성취입니다. 그것은 모든 형태의 권세를 소유하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그러기에 "사람들과 더불어[권세를 얻었음이니라]"라는 말씀이 덧붙여진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야곱이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을 때, 그는 에서를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깊은 고난의 때에 나타난 이 권세가 단 한 개인의 권세라는 점을 주목하십시오. 하물며 두세 사람이 합심하여 기도하는 곳에는 얼마나 더 큰 권세가 있겠습니까! 다음 사항들을 주목해 봅시다.
I. 이 권세가 될 수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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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적 힘이 될 수 없습니다. "네가 하나님처럼 팔이 있느냐?" (욥 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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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인 에너지(정신력)가 될 수 없습니다. "네가 총명이 있거든 말할지니라" (욥 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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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적인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기도가 일종의 주문(부적)이라고 환상을 갖는 듯하나, 이는 헛된 생각입니다. "그는 점쟁이들을 미치게 하며" (사 44:25).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마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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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로적인 것이 될 수 없습니다. "네 행위가 온전한 것이 그에게 어떠한 이익이 되겠느냐?" (욥 22:3). "네가 의로운들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겠느냐?" (욥 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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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적인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이 권세는 반드시 주님께서 주셔야 합니다. "그가 큰 권능을 가지시고 나와 더불어 다투시겠느냐? 아니로다 도리어 내 속에 힘을 넣어 주시리라" (욥 23:6).
II. 이 권세의 원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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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본성에서 나옵니다. 우리의 슬픔과 약함을 보실 때 그분의 선하심과 자비가 자극됩니다. 한 아이를 죽이려던 병사가 "나는 너무 작아요, 죽이지 마세요"라고 외치는 아이의 부르짖음에 무기를 내려놓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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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약속에서 나옵니다. 언약 안에서, 복음 안에서, 그리고 말씀 안에서 주님은 그분의 진리와 신실함에 호소할 줄 아는 자들에게 스스로를 의무 아래 묶어두셨습니다. "나를 기억나게 하라 우리가 함께 변론하자" (사 4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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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관계에서 솟아납니다. 아버지는 분명 자기 자녀의 말을 들으실 것입니다. 친구는 친구에게 진실할 것입니다. 아테네의 한 아이가 어머니를 다스리고, 어머니를 통해 집정관인 아버지를 다스려 결국 도시 전체를 움직였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처럼 사랑은 어린 아기가 통치자와 백성 위에 군림하는 권세를 갖게 했습니다.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곧 그분 앞에서 우리가 갖는 권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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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이전 행보에서 자라납니다. 주님은 그 목적에 있어 변함이 없으시기에, 그분의 백성을 선택하신 사실 자체가 그분 앞에서의 권세가 됩니다. 구속, 중생, 부르심, 교제는 모두 우리의 최종적인 보존을 위한 논거가 됩니다. 자비는 지혜가 시작한 일을 결코 저버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각 복은 사슬의 고리처럼 서로를 끌어당깁니다. 과거에 받은 자비는 현재와 미래의 도움을 구하는 가장 훌륭한 호소 재료입니다.
III. 이 권세는 어떻게 행사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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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함에 대한 깊은 자각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고후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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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선하심에 대한 단순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요 14:12). 믿음은 승리하는 은혜입니다. "그것은 세상과 지옥을 짓밟고, 사망과 절망을 정복하며, 무엇보다 기이한 일은, 기도로 하늘(하나님)을 이기는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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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의 뜻에 대한 간절한 순종이 있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면 그 사람의 말을 들으시느니라" (요 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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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고한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2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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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끈질긴 강청함이 섞여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2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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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마음을 쏟아부어야 합니다. "그는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호 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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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함이 더해진다고 해서 멈춰서는 안 됩니다. 야곱은 다리를 절게 되었으나 승리했습니다. "저는 자도 물건을 탈취할 것이며" (사 33:23).
IV. 이 권세의 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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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자신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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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시련으로부터의 구원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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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로운 승격을 위해. "네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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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처럼 연속되는 시련에 부름받을 때, 미래의 위로와 힘과 성장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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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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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아내들과 자녀들이 보존되었고, 에서의 마음이 누그러졌습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하는 더 큰 권세를 가졌다면, 우리 친척들 사이에서 더 행복한 영향력을 끼쳤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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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례들(아브라함, 욥, 모세, 사무엘, 바울 등)도 타인의 유익을 위해 하나님과 함께하는 권세를 행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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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권세로 예수님을 위해 영혼들을 얻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과 통하는 권세가 있는 자는, 하나님을 위해 사람들과 통하는 권세를 갖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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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함께하는 권세를 소유하려는 거룩한 야망을 가집시다! 만약 그 권세를 가졌다면 잃지 말고 끊임없이 행사합시다. 하나님과 통하는 권세는 없으면서, 우리의 보잘것없는 팔로 그분과 맞서 싸우는 것은 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
설교를 빛나게 하는 노트 (Notes for Brighte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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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은 인간이었고, 홀로였으며, 나그네였고, 지친 자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쉽게 짓밟히고 짓개어지는 벌레 같은 존재였으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사 41:14). 그러나 은밀한 기도 속에서 그는 너무나 강력하여 전능하신 하나님을 이겼습니다. 그는 너무나 위대하여 전능자를 정복했습니다. — 토마스 브룩스(Thomas Br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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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격한 아버지도 딸의 눈에 고인 눈물 한 방울에 정복당합니다. 거절당했을 때의 실망감을 보는 순간, 완고한 마음도 누그러져 자선을 베풀게 됩니다. 슬픔은 자비를 강권합니다. 끈질긴 강청함이 슬픔의 손을 잡고 자비의 문으로 함께 나아갈 때, 그 문은 스스로 열립니다. 진실함, 간절함, 인내, 신뢰, 그리고 기대는 모두 하나님과 함께하는 권세를 얻는 강력한 도구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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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가 아버지의 목을 껴안고 입맞춤과 간청과 눈물로, 그렇지 않았으면 거절당했을 것을 얻어내는 모습을 얼마나 자주 보았는지 모릅니다. 말 못 하는 짐승이 먹이를 달라고 애원하는 눈빛으로 우리 얼굴을 쳐다볼 때조차 그 간청에 굴복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보다 덜 자비로우시겠습니까? — 거스리 박사(Dr. Guthr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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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기록된 기도의 위대한 공적들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하기란 매우 쉬운 일입니다. 기도는 하늘을 열고 다시 닫는 열쇠입니다. 그것은 강력한 군대를 격퇴했으며, 마귀 자신의 기술로도 찾아낼 수 없는 비밀들을 풀어냈습니다. 기도는 절망적인 음모들이 잉태된 태 중에서 그것들을 질식시켰으며, 성도들을 해치려 준비된 잔인한 기계들이 도리어 그 발명가들에게 돌아가게 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타인을 위해 세운 교수형 틀을 자신들이 물려받게 되었습니다. 기도의 노크 소리에 감옥 문이 열렸고, 무덤은 죽은 자를 내놓았으며, 바다의 리바이어던(바다 괴물)은 삼킨 먹이를 소화하지 못하고 다시 토해내야 했습니다. 기도는 하늘의 태양 전차를 멈추게 했고, 심지어 뒤로 물러나게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전능하신 분께서 사람과 민족들을 향해 진군해 오실 때 그분을 붙잡아 자비로운 후퇴를 하시게 했다는 점입니다. — W. 거널(W. Gurn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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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니(Finney) 목사의 이야기에 따르면, 어떤 마을에 여러 해 동안 부흥이 없었습니다. 교회는 거의 문을 닫을 지경이었고, 청년들은 모두 회심하지 않았으며, 황폐함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 마을의 외진 곳에 대장장이 일을 하는 노인이 살고 있었는데, 그는 말을 너무 심하게 더듬어서 사람들이 그의 말을 듣는 것조차 고통스러울 정도였습니다. 어느 금요일, 그가 가게에서 혼자 일하던 중 교회의 상태와 회개하지 않는 자들로 인해 마음이 몹시 괴로워졌습니다. 그 고통이 너무나 컸기에 그는 일을 내려놓고 가게 문을 잠근 채 오후 내내 기도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겨루어 승리했고, 주일에 목사를 불러 집회를 열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목사는 잠시 주저하다가 참석자가 적을까 걱정하며 승낙했습니다. 그날 저녁 대저택에서 집회가 열렸습니다. 저녁이 되자 집이 수용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모였습니다. 한동안 모두 침묵이 흐르다가 한 죄인이 울음을 터뜨리며 말하기를, 만약 기도할 줄 아는 사람이 있다면 제발 자기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뒤이어 또 다른 사람, 또 다른 사람이 이어졌고, 결국 마을 구석구석에서 온 사람들이 깊은 유죄 판결(죄책감) 아래 있음이 드러났습니다. 놀라운 점은, 그들 모두가 죄를 깨달은 시각이 바로 그 노인이 자신의 가게에서 기도하던 그 시각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강력한 부흥이 뒤따랐습니다. 이 말더듬이 노인은 승리했고, 왕자처럼 하나님과 함께하는 권세를 가졌던 것입니다.
원문 or 출처
C. H. Spurgeon, My Sermon notes & 2: Genesis to Malachi, vol 1 (Bellingham, WA: Logos Bible Software, 2009), pp. 12–15.